존 그레이: 미 제국의 종말
[…]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그 결과는 이란이 주요 강대국으로 재부상하는 것이리라. 사담 후세인과 그의 바트당 세속주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필연적으로 테헤란의 입지를 강화하고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에서 이란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한 이란의 국력 증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거대하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의 결정권자로서 이란은 글로벌 석유 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세력이 되었다. 운송과 산업 부문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는 인류의 에너지 수요 중 극히 일부만 충족할 뿐이다. 현재 형태의 세계화는 탄화수소의 산물이다. 배터리와 자석에 들어가는 광물을 대규모로 채굴해야 한다는 점에서, 재생에너지 자체도 화석연료의 파생물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이러한 공급망을 지배하며 종종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석탄 생산량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형태의 친환경 전환이든 아직 요원한 전망이다. 그동안 이란은 에너지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행위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트럼프의 유람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만약 그가 중동에서 후퇴한다면, 미국 보호 아래 있던 국가들은 어느 정도의 중립을 지킬지 아니면 부상하는 이란에 맞서 연합을 구축할지 사이에서 흔들릴 것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오만은 전쟁 전보다 더 큰 위험에 처한 채 복합적인 위협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마무리 짓기”를 선택하고 지상전을 개시한다면, 미국은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합친 것보다 더 큰 대참사 속으로 끌려 들어갈 것이다.
영국에서는 워싱턴에 이성이 돌아올 때까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자는 게 기본 입장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왜 그런 인내심을 보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이들이 행동에 나서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기가 있을 수 있겠는가? 방어가 취약한 유럽에서 하이브리드 전쟁을 강화하는 것은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에서 유리한 지렛대를 제공할 것이다. 트럼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동으로 군사 자산을 이동시키고 탄약을 소진함에 따라, 시진핑은 총 한 방 쏘지 않고도 대만을 병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짧은 일탈은 글로벌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후퇴에 있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대체 어떤 세계에서 그토록 기이한 인물이 미국 대통령 자리에 두 번이나 오를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세계이다. 우리의 지배층이 트럼프를 일시적인 일탈로 치부하며 자신들조차 자신들이 만든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바로 그 세계 말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손대는 모든 것을 망칠지도 모르지만, 세계사적 인물로서 그의 위상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Gray, J. (2026, April 8). The end of the American empire. The New Statesman. https://www.newstatesman.com/international-politics/geopolitics/2026/04/the-end-of-the-american-empire